전 세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모바일 신분증에 대해 알아봅니다
최근 현금을 사용했던 적이 언제인가요? 혹은 지갑에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나요? 이제 위의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현금이 점차 주결제 수단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갑 안의 현금과 신용카드가 지닌 지급결제의 역할은 빠르게 모바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갑 안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신분증은 어떨까요?
사실 편의점에서 담배나 주류를 구매하거나 주점에서 19세 이상을 증명할 때 빼곤 신분증을 사용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2008년에 운전면허증 미소지 처벌 규정이 폐지된 이후로 신분증 사용 빈도는 더 줄었죠. 그나마 오프라인에서 신분증이 필수로 사용되는 곳은 출입국 시 공항에서 사용하는 여권 정도입니다. 가끔은 여권도 모바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생각이 드는데요.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모바일 신분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모바일 신분증 기술,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발표한 모바일 운전면허증 앱, LA Wallet (사진 출처: LA Wallet 앱)
신분증을 모바일로 사용한다면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불법 사용, 위조, 복제 등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카드로 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에는 사진을 비롯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중요한 개인정보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만약 편의점 직원이 주류를 구매하며 건넨 신분증 정보를 기억하면 충분히 악용할 수 있죠. 모바일 신분증은 개인 인증을 통하여 필요한 정보 여부만 노출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바일 신분증은 별도로 휴대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가령 차를 렌트할 때 운전면허증 없이도 모바일로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겠죠. 만약에 여권 기능까지 제공한다면 공항을 갈 때 매번 여권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만료 기간에 따른 갱신도 모바일로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가능성을 검토 중입니다. 2014년 말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는 모바일 앱으로 작동되는 운전면허증을 테스트했고, 2015년 초에 델라웨어 주에서도 동일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콜로라도 주, 와이오밍 주 등 약 10여 개의 주에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시범 운영했습니다.
본격적인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2018년 7월 루이지애나 주에서 등장했습니다. 바로 루이지애나 주 경찰, 공공안전부(Department of Public Safety), 차량관리국(Office of Motor Vehicles)이 공동으로 개발한 ‘LA Wallet’이라는 모바일 운전면허증 앱입니다. LA Wallet은 앱을 다운받고 5.99달러를 결제하면 운전면허증을 등록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2019년 1월을 기준으로 77,000여 명이 앱을 다운받고, 41,000여 명의 운전자가 면허증을 등록해서 사용하는 중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로 모바일 신분증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위변조가 불가능한 거래원장인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신분증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앞장서서 개발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신분증 ‘디지털 ID’는 모바일을 통해 필요한 상황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류 구매 시 QR코드에 19세 이상을 의미하는 정보만 띄우거나, 차를 렌트할 때 운전면허 보유 여부만 노출하는 방식입니다. 정보의 선별적인 노출을 통해 개인 정보가 악용될 소지를 막을 수 있죠.
또한 네덜란드는 올해 캐나다와 함께 디지털 ID 기반으로 여권을 대체하는 시범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캐나다의 토론토 공항을 오가는 데 발권부터 출입국 심사까지, 모든 절차를 디지털 ID로 처리하는 서비스입니다. 만약 네덜란드가 테스트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신분증이 보급되어 인근 국가까지 참여한다면, 여러 나라와 협업하는 유럽연합(EU) 입장에서는 효율성과 편리성을 더 제고할 수 있습니다.
국내 이동통신사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본인인증 서비스 앱, 패스(PASS) (사진 출처: PASS by KT 앱)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이동통신 3사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본인인증 서비스 ‘패스(PASS)’인데요. 패스에서 본인인증을 거치면 나타나는 QR코드를 조회해서 운전면허증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력되는 화면이 별도의 정보가 아닌 QR코드이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노출될 일도 없습니다. 패스 기반의 모바일 신분증은 이르면 올해 안에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학생증은 물론 공인인증서까지 커버하는 모바일 신분증
향후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의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전망입니다. 지난 7월 이동통신 3사, 삼성전자,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코스콤 등은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신분증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패스 기반의 인증 서비스가 아닌 별도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서비스인데요. 그 활용 범위는 학생증, 사원증 등을 비롯해 공인인증서까지 확대될 예정입니다.
물론 모바일 신분증에 대한 보안과 안전성부터 철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바일 간편결제 체계가 큰 사고 없이 자리를 잡은 걸 보면, 모바일 신분증 보안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여권 대신 모바일로 공항을 출입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글. 현경민(커넥팅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