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주상 연구원, 구본승 책임연구원, 정준호 책임연구원, 송재창 연구원, 임영훈 연구원
자동차, 건축, 기계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는 철강은 산업의 근간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능을 갖춘 철강 소재에 대한 필요와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물의 뼈대를 담당하는 형강과 철근은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소재입니다. 세계적으로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가 많아진 요즘, 지진 같은 외부 충격에 잘 견디고 극한의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뛰어난 철강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모든 글로벌 제철 기업의 목표이자 생존 전략입니다. 단순히 고강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미끄러짐을 방지하거나 녹슬지 않게 하는 등 개성을 더한 철강 소재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역시 하늘을 찌를 듯 더 높이, 그리고 안전하고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철강 신소재 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고강도·다기능 철강 소재
철강 소재로 만든 제품들
고강도 내진 형강 일반 강재 대비 항복비(Yield Ratio)*를 낮춰 내진성을 부여한 형강
내화내진 형강 낮은 항복비와 고온 강도, 안정성이 확보된 복합기능 형강
고강도 내진 철근 지진에 대비해 충분한 소성 변형능*을 확보하여 내진성을 갖춘 철근
극저온 보증 철근 극저온 상태에서 취성 파괴(Brittle Fracture)*를 최소화한 철근
* 항복비: 항복강도(재료에 힘을 가해 형태가 변형돼 복원되지 못하는 시점의 힘)를 인장강도(양쪽에서 잡아당겨 끊어지는 시점의 힘)로 나눈 것을 백분율로 나타낸 것으로, 항복비가 크면 변형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 소성 변형능: 탄성 변형과 달리 금속에 가해진 힘에 의하여 형상이 영구 변형하는 능력
* 취성 파괴: 재료가 외력에 의해 거의 소성 변형을 동반하지 않고 파괴되는 것
철 그 이상의 가치를 향해
왼쪽부터 정준호, 구본승 책임연구원
현대제철은 2005년 국내 업계 최초로 높은 강도와 에너지 흡수력, 충격 인성을 갖춘 내진 강재를 개발했습니다. 최근에는 화재에도 강하게 버틸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내화내진 형강을 세계 최초로 완성하는 등 성과를 이뤘습니다. 이처럼 전기로기술개발1팀은 철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소재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 세계 제철 기업들이 인수합병 등을 통해 규모를 키우며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데요. 철강 소재 분야의 최근 트렌드가 궁금합니다.
세계적인 제철 기업들을 보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두께, 크기, 모양, 강도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개별 맞춤화가 중요해진 것이죠. 그렇다 보니 저희가 철강 신소재의 핵심 트렌드로 보고 있는 것은 고강도화와 다기능성입니다. 고강도의 형강을 통해 더 높은 고층 빌딩을 올릴 수 있고 뼈대를 견고하게 잡아줘 건축비를 절감할 수도 있으니까요.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내화내진, 극저온처럼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는 신소재 개발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Q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전기로기술개발1팀이 완성한 신소재 제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전반적으로 전기로재라고 하면 건축 구조용 강재, 즉 형강이나 철근이 메인 제품입니다. 저희 팀은 지진과 화재에 복합적으로 강한 ‘내화내진 복합성능 H형강’과 올해 현대제철 철강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LNG 저장탱크용 극저온 보증 철근’을 개발했는데요. 회사의 비전이 ‘철 그 이상의 가치 창조’이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철강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신소재입니다.
Q 현대제철이 내진 강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인데요. ‘내화’가 추가되었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지진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는 나라였죠. 하지만 2016년 경주 지진 발생 후 내진 강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형강과 철근은 건물이 완성되면 볼 수 없는 건축 자재인데, 이것이 드러났다는 건 바로 재해가 일어났다는 뜻이죠. 이번 사고를 통해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 붕괴도 문제지만 이후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질식 위험은 물론이거니와 철이 열화되면 건물이 더 쉽게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진을 견딜 만큼 강하면서도 화재에도 버틸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내화내진 형강은 355메가파스칼(MPa)급 제품입니다. 1㎟ 면적당 약 36㎏의 무게를 견딜 수 있고, 온도가 600℃까지 상승해도 상온 대비 67% 이상의 항복강도를 유지해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특징이죠. 일반적인 강재는 350℃에서 상온 대비 항복강도가 30% 이하로 감소하게 됩니다. 정부의 R&D 국책 과제인 ‘산업소재 핵심기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내화내진 강재 개발을 진행했는데요. 2020년에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라 올 연말까지 한층 고강도로 업그레이드된 420MPa급 내화내진 형강을 개발하고 규격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건축물의 고층화·대형화 추세에 맞춰 내화내진 형강을 적용할 경우 건물의 안전도 향상은 물론, 내화 피복제 사용량 절감과 공정 감소를 통한 공사 기간 단축 및 비용 절감이 예상됩니다.
Q 극저온 철근은 어떤 강재인가요? 일상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소재인 것 같습니다.
2016년 당시 극저온 철근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소재였죠. 세계 1위 제철 기업인 아르셀로미탈이 독점하고 있던 철강 소재였습니다. 극저온 철근이 주로 쓰이는 곳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드는 LNG 탱크의 외벽인데요. 내부 탱크가 파괴돼 영하 190℃의 LNG 가스가 유출될 경우, 기존의 저온 철근은 취성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극저온 철근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조사해보니 향후 LNG 탱크 건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나왔고, 국산화에 성공하면 큰 수익을 내고 더불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6년 개발을 시작할 당시에는 막막했지만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한의 합금 원소를 사용하되 미세 조직을 제어하는 등 금속학적인 방법을 고민했죠. 결국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LNG 저장탱크용 극저온 철근’을 완성했고 현대제철 철강상 대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기존의 저온 철근은 대략 영하 40℃까지 견딜 수 있었다면, 저희가 개발한 극저온 철근은 영하 165℃까지 파손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소재입니다. 아직까지 극저온 철근이 LNG 탱크 외에는 사용처가 드물지만 향후 극지 건축물 등 용도를 확대해나가기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Q 신소재를 개발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염두해야 할 부분이 있나요?
건물이 무너지면 인명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건축 시장에서 신소재는 보수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능이 좋은 소재를 개발한다고 해도 비용이 적절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당하게 되죠. 또 소재를 꾸준히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 시설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소재를 개발한다고 해도 보수적인 건설사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죠. 현대제철은 2004년부터 내진 강재 개발에 주력했는데 2018년에 국내 최초의 내진 강재 브랜드인 ‘H CORE’를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내진 강재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와 건설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요. 신소재의 경우 표준화 인증을 받는 데 많은 시일이 걸립니다. 국내에 없는 기술일 경우 평가 방안까지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해외 선진국을 몇 번씩 다녀와야 하죠. 극저온 철근의 경우 극저온에서 실험할 수 있는 지그(Jig)를 직접 설계하고 세계 유일의 시험 기관이 있는 룩셈부르크까지 날아갔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좋은 신소재를 개발하는 미시적인 관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트렌드를 예측해 계획을 갖고 상용화될 제품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기로기술개발1팀에서 준비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먼저 내화내진 형강을 420MPa급으로 완성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고요. 또 배나 해양 구조물을 쓸 때 사용하는 해양용 형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온을 견디고 파도에 의한 반복적인 힘을 견디는 고강도의 소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죠. 형강은 다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편입니다. 철근에서는 단번에 초고강도인 기가파스칼(GPa)급으로의 도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가능해 보여도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퍼스트 무버’가 되는 소재를 개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