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이 쌓인 마이산의 아름다운 설경
북한의 개마고원과 쌍벽을 이루는 곳이 전북의 진안고원입니다.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머리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첩첩산중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이곳은 해발 400m 고원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살아 있어 천혜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마이산’
말의 귀처럼 쫑긋 솟은 마이산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1억 년 전 퇴적층이 쌓인 호수 바닥이 지각변동에 의해 솟아오르면서 기이한 봉우리 한 쌍이 생겨났습니다. 불끈 솟아오른 두 봉우리는 마치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이산은 조선왕조의 탄생 설화를 간직한 산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가 등극하기 이전에 꿈에 신인(神人)이 ‘금으로 된 자(金尺)’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 잡을 사람은 경이 아니고 누구겠는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환여승람’ 등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가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은 장소가 진안 마이산이었다고 합니다. 마이산은 암마이봉(686m)과 숫마이봉(680m) 두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를 오르는 길은 북쪽과 남쪽 두 곳입니다. 산의 풍취를 제대로 느끼고 겨울트레킹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남부 매표소에서 출발하는 남쪽 길이 더 좋습니다. 산 중턱 은수사까지 완만한 평지인 데다 길도 험하지 않아 산책하듯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면 북부 매표소에서 오르는 길은 500여 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어 조금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1,3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금당사
역사가 무려 1300년이나 되는 고찰인 금당사 전경
남부 매표소를 지나면 제일 먼저 금당사가 나옵니다. 탑사에 정신이 팔려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 절이나, 역사가 무려 1300년이나 되는 고찰입니다. 경내에는 금칠을 입힌 대웅전이 화려하게 빛나고, 종무소 옆 작은 오층석탑도 인상적입니다. 오층석탑은 탑신과 옥개석이 제각각으로 초기의 원형은 아닌듯합니다. 기단부 중석은 다른 돌로 대체했고 갑석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놓았습니다. 상륜부도 나중에 얹은 것으로 보이지만 절에서 몇 안 되는 문화재 중 하나입니다.
극락전에도 주요 문화재 두 점이 있습니다. 은행나무를 통으로 깎아 만든 금당사목불좌상과 폭 5m 높이 9m에 이르는 괘불탱화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 괘불탱화와 더불어 보살 괘불탱화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을 응용해 쌓은 탑사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탑사 전경
금당사에서 20여 분을 더 오르면 마이산의 상징인 탑사가 있습니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들어앉은 이 절은 이갑룡 처사가 천지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 법을 응용해 쌓았다는 탑들이 즐비합니다. 절 마당이 온통 탑입니다. 천지탑, 중앙탑 등 80여 기의 석탑을 막돌 허튼 층 쌓기 기법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보기에는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것 같아도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입니다. 탑사 뒤로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런데 암마이봉을 자세히 살펴보면 윗부분에 폭격을 맞은 듯 크고 작은 홈 여러 개가 움푹 패여 있습니다. 마이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tafomi) 지형이 발달한 곳입니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이산은 암석이 자갈로 이루어져 절벽에서 자갈 덩어리가 빠져나오면 그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신비의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은수사
태조 이성계가 이 절의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해서 이름 지은 은수사
탑사에서 계단을 올라 5분쯤 걸어가면 숫마이봉 아래 은수사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이 절에서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해서 은수사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은수사는 겨울철에 특히 유명합니다. 신비의 역고드름 때문입니다. 청배실나무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물그릇 안의 물이 얼면서 하늘을 향해 고드름이 치솟습니다. 학자들은 일종의 대류 현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역고드름은 마이산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은수사 쪽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은수사 왼쪽 뒤편에는 암·수 마이봉 사이로 계단이 놓여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인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일반적인 문이 아닙니다. 물이 갈라지는 분수령입니다. 암마이봉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 수마이봉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의 원류가 됩니다.
노채마을과 금굴의 머루와인
노채마을의 금굴 와인창고
노채마을은 농촌체험과 머루와인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겨울철에는 추위 때문에 농촌체험은 뜸하지만, 마을 특산물인 머루로 담근 와인 저장창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장창고는 다름 아닌 금굴. 일제 강점기에 때 실제로 금을 캐던 갱도를 와인 저장고로 활용 중입니다. 금굴에 들어서면 와인 익어가는 향기가 코를 찌릅니다. 벽면으로 와인병이 줄줄이 놓여 있습니다. 외부 기온이 아무리 낮아도 금굴 안은 연중 12℃로 일정하게 유지되어서 와인을 보관하는데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노채마을 머루와인은 이곳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된 후 세상으로 나옵니다. 머루와인은 포도와인보다 신맛이 강하고, 머루 본연의 향과 맛이 있어 포도와인과는 다른 풍미가 있습니다. 금굴에는 머루와인 외에도 금을 캐기 위해 굴을 파던 흔적, 불발탄으로 남은 다이너마이트, 금광맥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얼음꽃과 물안개가 환상적인 ‘용담호’
금강의 청정수를 담아 놓은 인공호수, 용담호
진안 여행은 주로 홍삼스파로 마무리합니다. 여행의 피로도 풀고, 한겨울 추위에 고생한 몸도 따뜻하게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채마을에서 홍삼스파로 가는 길에 용담호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진안은 본래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었지만, 2001년 용담댐이 완공되면서 내수면형 관광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용담호는 금강의 청정수를 담아 놓은 인공호수입니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댐인 용담댐으로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고, 맑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길을 따라 호반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겨울 호수는 무겁고 차분한 느낌으로 길손을 맞습니다.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로 손꼽힙니다. 특히 이른 아침 용담호에 가면, 고즈넉한 수면 위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를 볼 수 있습니다. 물길을 따라 소리 없이 펼쳐지는 호수의 물안개는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호수라고 해서 물안개를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교차가 크고, 바람 한 점 없이 맑아야 물안개를 볼 수 있습니다. 진안 용담호는 고원 지역답게 바람이 적어 비교적 쉽게 물안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몸으로 먹는 홍삼 ‘홍삼스파’
몸에 좋은 홍삼과 한방 약재로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홍삼스파
홍삼스파는 마이산북부주차장 입구에 있습니다. 특이하게 홍삼을 복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몸을 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몸에 좋은 홍삼과 한방 약재로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해 오감을 자극하는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습니다. 개인 욕조에 홍삼액을 넣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로마테라피, 물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플로팅, 홍삼 성분이 함유된 거품이 가득한 버블 테라피 등 9개 스파 코스를 통해 몸의 기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노천욕을 할 수 있는 옥상 야외노천탕이 인기입니다. 왜냐하면 하얀 눈이 덮인 마이산의 절경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두한족열을 즐기면서 암·수마이봉의 귀경을 감상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기묘한 경관과 신비로운 자연현상 그리고 몸이 건강해지는 체험까지! 겨울 진안 여행은 힐링입니다.
글. 김현정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