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팅은 지속성, 탄탄한 연출, 스토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콘셉러(콘셉트+er, 콘셉트를 중시하는 소비자를 의미하는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직관적 미학, 순간의 느낌, 가벼운 가십거리에 빠르게 반응합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과하게 꾸며진 공간 배경에서의 셀카, 유치하더라도 재미난 상황 연출, 대충 만든 듯한 저퀄리티의 영상 등 콘셉트를 가지고 노는 콘셉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콘셉러란 무엇인가
확고한 취향과 분명한 목적을 가진 콘셉러
한국 대중문화, 혹은 소비문화의 오랜 특징은 ‘트렌드는 있되 스타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히트 상품이 등장하면 그것이 소비재든지 문화 상품이든지 간에 마치 필수이자 의무처럼 소비하는 현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 파타고니아 티셔츠 같은 패션 아이템들이 있었고, 허니버터칩과 꼬꼬면 같은 식품도 있었습니다. 아이돌 팬덤과 거리가 먼 40대 이상의 중년들이 BTS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비슷합니다. 남들이 다 입고, 보고, 들으니까, 혹은 요즘 대세라니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소비하는 것입니다. ‘쏠림의 문화’라 규정할 수 있는 특성입니다.
최근 들어 이런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콘셉러’들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콘셉러란 무엇일까요? 무조건 싼 가격, 유행하는 아이템보다는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신조어입니다. 즉, 트렌드를 좇는 것도 아니고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확고한 취향과 분명한 목적을 가진 소비 계층을 뜻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취향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1세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맞춤형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부터입니다. 기존 언론과 매체 대신 해외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탐구하는 동안 문화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엮이기 시작했고 커뮤니티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걸 향유하던 시대가 끝나면서 취향이란 개념은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즉 ‘소비하는 인간’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된 것입니다. 취향을 바탕으로 소비하는 형태는 인디음악, 독립영화의 전성기를 낳았고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깨우친 것입니다.
‘얼짱’에서 ‘인플루언서’까지
모두에게 열린 미디어, SNS의 등장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본능은 SNS의 등장과 함께 만개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평범한 사람도 남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누구나 인기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초기 SNS에서 인기를 얻은 이들은 연예인 또는 매스미디어의 화보를 따라 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얻었습니다. 외모를 활용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진과 글로 대중의 선망을 샀습니다. 과거 유행했던 ‘얼짱’부터 ‘인플루언서’에 이르는 이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소품, 여행하는 관광지는 여느 연예인이나 방송만큼의 파급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일상’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또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연출과 스토리가 필요해집니다. 여기서 콘셉트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 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떤 캐릭터로 만들까요? 어떤 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콘텐츠로 만들까요? 스스로를 영화 <트루먼 쇼>의 짐 캐리로 여기는 세대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고민거리가 됩니다. 글과 사진, 영상까지 모든 미디어가 모두에게 열린 시대의 필연적인 흐름입니다.
매스미디어를 위협하는 뉴미디어의 등장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점차 다양해진 콘셉트
그리하여 콘셉트는 다양해졌습니다. 화려함에서 출발한 콘셉트는 전문성으로 옮겨 갔습니다. 평론가와 기자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리뷰’ 콘텐츠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나 책 같은 문화 상품부터 화장품과 전자기기 제품 리뷰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콘셉트들은 비교적 긍정적이었습니다. 연예인과 모델로 대변되는 외모 자본, 특정 분야에 대한 ‘오타쿠’적 관심과 이를 대중에게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언변으로 만들어내는 지식 자본은 분명히 매스미디어가 독점하고 있던 영역을 분산시키는 공이 있었습니다. 권위를 해체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닙니다. 대중은 뉴미디어를 통해 기존의 미디어는 다루지 않았던, 다룰 수 없었던 콘셉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과식과 폭식 등의 ‘먹방’을 시작으로 일부러 욕먹기 좋은 일만 골라서 선보이는 ‘병맛’ 콘셉트도 등장했습니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콘셉트, 사회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콘셉트 등도 속속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비난도 따르지만 이런 콘셉트에 열광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치계의 격언인 “나에 대한 뉴스는 부고 기사만 빼고 다 좋은 것”, 연예계의 격언인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미디어를 손에 넣은 대중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히 드러낸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개성으로 무장한 크리에이터들의 성장
물론 예전에도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모범생이 있고 얼짱이 있는 반면, 이상한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인정받는 건 긍정적인 캐릭터뿐이었습니다. 현재의 대중은 긍정과 부정으로 콘셉트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개성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 같으면 사소한 비판 여론에도 위축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됐지만, 이제는 사회 규범 안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공개하며 돈과 인기를 누립니다. 유튜브와 아프리카TV 같은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아이디어와 개성으로 무장한 크리에이터들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상황극과 연기를 더 해 성우 못지않은 실력을 선보이는 대도서관, 유명인과 똑같은 얼굴로 연출할 수 있는 메이크업 기술을 소개하는 이사배, 장난감 리뷰를 다루는 키즈 유튜버 등 전문 영역과 비전문 영역을 넘나드는 콘셉러가 등장한 것입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이끄는 유행의 흐름에서 벗어나 개인의 끼와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이들의 콘텐츠들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통해 소비됩니다. 그리고 다시 이들 중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되기도 합니다. 콘셉트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되는 것. 정보와 콘텐츠가 넘쳐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지난 세기말 등장한 취향이 이제 소비의 단계를 지나 콘셉트를 생산하는 콘셉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해수욕장의 모래처럼 방대하고 넓은 콘텐츠의 바다에서는, 콘셉러만이 최소한 조약돌처럼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