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류코에서는 눈앞에서 셰프의 가벼운 손놀림으로 완성된 초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잘 숙성되어 부드러운 회와 공기를 머금은 밥이 입안에서 한데 어우러집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형태가 있었는데, 입으로 들어가고 나면 녹아 사라집니다. 초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혀에 남은 것은 감동입니다. 눈앞에서 셰프의 가벼운 손놀림으로 완성된 초밥을 맛보는 일만큼 설레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서울은 스시 전문점인 ‘스시야(すしや)’의 춘추전국시대’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스시야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중 현대카드 마이메뉴가 소개한 스시 류코를 찾았습니다.
이름을 걸고 선보이는 스시
김광민 셰프는 긴자의 유명 스시야 '스시 카메사카’ 출신입니다
스시 류코는 서울의 유명 이자카야 갓포 네기의 세 번째 매장이자 첫 번째 스시야입니다. 이 새로운 시도를 위해 두 명의 셰프가 힘을 합쳤습니다. 갓포 네기의 원년 멤버 이기도 한 류명렬 셰프와 도쿄의 유명 스시야 ‘스시 카메사카’ 출신의 김광민 셰프입니다.
“6년간 일본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같은 일식이라면 스시, 가이세키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깊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녹여 스시 류코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손님을 맞는 대파 모양의 젓가락 받침은 류명렬 셰프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류명렬 셰프의 이름에서 ‘류(柳)’를, 김광민 셰프의 이름에서 ‘광(光)’을 따와 스시 류코(柳光)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두 셰프의 이름을 걸고 선보이는 가게인 만큼 어느 부분에서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대파 모양의 젓가락 받침도 류명렬 셰프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대파를 일본어로 ‘네기(ねぎ)’라고 합니다. 일부러 대파 모양으로 만들었죠. 손님이 자리에 앉아 처음 사용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신경을 썼습니다.”
스시 류코는 오직 ‘오마카세’ 방식으로 스시를 제공합니다. 셰프가 고른 최상의 식재료를, 셰프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조리해, 최적의 타이밍에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오마카세’입니다.
붉은 샤리의 비밀
스시 류코의 샤리는 적 식초를 넣어 붉은색을 띱니다
스시에 쓰이는 밥은 샤리(しゃり)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식초, 소금, 설탕을 넣어 만들지만 스시 류코에서는 식초와 소금 두 가지만 넣은 샤리를 사용합니다. “스시 류코의 특징은 산미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적 식초를 이용해 강한 산미를 주면 질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특별함은 적 식초인데요. 술지게미를 넣어 발효시킨 적 식초는 일반 식초보다 감칠맛과 발효 풍미가 강하기 때문에 샤리의 산도를 높여줍니다. 건강함에도 한 걸음 다가가 있습니다. 염도를 낮추는 대신 적 식초를 강하게 사용해 간을 맞추는 방법으로 소금을 적게 쓰면서도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등푸른생선이 주는 즐거움
스시 류코에서는 다양한 등푸른생선을 선보입니다
스시 위에 올라가는 생선 등의 재료는 네타(ネタ)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시 류코의 도마 위를 보면 흰 살 생선보다 붉은 살 생선이, 붉은 살 생선보다 등푸른생선이 많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고등어, 꽁치, 정어리, 전갱이, 전어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것이 스시 류코만의 특징입니다. 등푸른생선은 비린 맛이 강해 쉽게 회로 즐기기 어려운데, 이 비린 맛이 3~5일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나면 감칠맛으로 변합니다.
왼쪽부터 실파를 올린 전갱이 스시, 생강을 올린 고등어 스시, 실파를 올린 갈전갱이 스시입니다
“등푸른생선에서는 바다의 맛이 납니다. 짙은 감칠맛과 고소한 기름의 맛을 가진 등푸른생선에는 담백한 흰 살 생선은 가질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죠. 특히 샤리의 강한 산미가 등푸른생선과 어우러지는 순간을 정말 좋아합니다.”
소금으로 더해지는 익숙함 속의 새로움
왼쪽부터 광어, 도미, 흑전줄갱이 스시, 천일염에 찍어 먹으면 회의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광어나 도미와 같은 흰 살 생선을 낼 때는 소금과 함께 냅니다. 40분간 저온에서 색이 나지 않도록 천천히 볶은 후 곱게 갈아낸 천일염입니다. 소금을 더하는 순간, 기름기 없는 회의 담백함 사이에 숨어있던 감칠맛이 살아나 조화를 이룹니다.
초밥의 생명은 조화로움
스시 류코는 가장 극대화된 스시의 맛에 집중합니다
스시 류코는 오직 스시의 맛에 집중합니다. 점심 코스에서는 간단한 애피타이저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스시만 제공할 정도로 하나하나를 음식으로서 다루고 있습니다. “아주 미묘한 차이가 스시의 맛을 결정합니다. 샤리에 스며든 따뜻한 공기의 양이나, 식감의 단단한 정도, 네타의 탄력 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좋은 스시가 됩니다.”
밥의 산미와 생선의 숙성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양쪽의 맛이 모두 살아있는 스시가 됩니다. 김광민 셰프와 류명렬 셰프의 기준은 바로 이 조화에 있습니다. 생선의 식감 차이를 고려해 두께와 밥의 양을 조정합니다. 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코스의 길이와 스시의 개수도 달라집니다. 가장 극대화된 맛을 선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남들의 기준 대신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다
스시 류코에는 ‘가격’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성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스시효’를 시작으로 호텔 일식당에서 셰프들이 독립해 각자의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이엔드급, 미들급 등 가격을 중심으로 다이닝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 일식 문화의 시초이기도 한 호텔 일식당은 높은 가격대 때문에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손님들이 많았는데요. 그래서인지 독립한 셰프들마다 자신이 속했던 곳보다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해 조금 더 많은 손님과 만나왔습니다.
스시 류코는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맛을 지향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스시 류코는 미들급 스시야입니다. 하지만 김광민 셰프와 류명렬 세프는 단지 ’금액’에 스시 류코를 맞추고자 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주방으로 들어온 생 와사비를 갈아서 사용하고, 전국에서 가장 좋은 생선을 구해 숙성하다 보니 식자재 비용이 굉장히 높은 편이지만 무리하게 메뉴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광민 셰프는 스시 류코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을 들려주었습니다.
“스시 류코의 스타일은 ‘우리’ 입니다. 우리 입맛에 가장 맞는 맛을 선보일 때 음식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내게 제일 맛있어야 손님에게 자신 있게 낼 수 있죠. 적당한 가격대로 문턱을 낮추고 그 맛을 가능한 많은 손님과 나누고 싶습니다.”
글. 김나영(푸드 칼럼니스트)
요리를 전공하고 푸드 매거진 라망에서 푸드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이후 GQ, 올리브 매거진 등 다양한 매체에 음식과 관련한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사진. 류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