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가치를 소중히 여겼던 사람. 이 이야기는 나무를 심으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몸소 실천했던 남편에 대한 아내의 회고록입니다.
#1
남편은 봄만 되면 나무를 심었다. 고향에 있는 산으로 가 그동안 심어놓은 소나무를 손질하기도 했다. 산에 있는 소나무가 그냥 자랄 것 같지만 잘 키우려면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근무할 때도 은행나무, 동백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벚나무를 공장 곳곳에 심었다. 울산의 도시 정비 사업으로 베일 뻔한 큰 소나무를 공장 부지로 옮겨 심기도 했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은 그 어떤 공장보다 숲이 우거져 있다.
#2
남편은 기아차 근무 시절에도 나무를 심었다. 아산에 현대차 공장을 짓기 위해 야산 정지작업을 할 때, 수십 년 된 소나무를 그냥 뽑아버리기 안타까워 남양연구소 앞 황무지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옮겨 심었다. 때문에 공장 건설이 늦어진다는 질책을 들으면서도 남편은 나무 옮겨 심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옮겨 심은 소나무는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몹시 칭찬할 정도로 잘 자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3
봄만 되면 산으로 달려가는 남편의 모습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오르게 했다. 1913년 프로방스 지방으로 여행을 간 주인공은 해발 1,300m의 높은 황무지에서 양을 기르며 도토리를 심고 있는 한 사나이를 만난다. 쉰다섯 살의 나이에 이름은 ‘엘 쟈아르 브휘(이하 브휘)’라고 했다. 브휘는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는데 그중 2만 개만 싹이 났고, 그것도 반은 동물이 먹어치우고 못 쓰게 되었다. 그래도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황무지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브휘는 그 옆에 너도밤나무도 심고 자작나무도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4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주인공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5년을 보냈다. 전쟁이 끝난 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그는 브휘를 찾아갔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죽음을 봐왔기에 혹시 브휘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심은 떡갈나무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등 풍성하게 자란 나무를 보고 정부는 파견단을 보내 자연림을 시찰했다. 그들은 그곳을 산림국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벌목을 금한다고 선포했다.
#5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지만 브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오로지 나무만 심다 1945년 87세의 노인이 되었다. 그사이 그곳에는 마을이 생겼고 그는 많은 이와 행복하게 살다 1947년, 바농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내가 감동을 받은 대목은 황무지를 개간해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브휘가 거기에 대한 어떠한 권리나 주장,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6
남편은 나무에 쏟는 사랑 못지않게 회사를 사랑했다. 공장에 근무하면서 일터에 나무를 심고도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은 가도 나무는 건재하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퇴직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가 심은 나무들은 여전히 공장 한편에서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동안 회사도 나무처럼 무럭무럭 성장해 전 세계로 뻗어가는 굴지의 기업이 되었다.
#7
남편을 보면서 나무를 심는 것이 매우 위대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하루하루 치열하게 일하는 고단한 일터에서 사람들이 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리라.
글. 김국자
1966년 그룹에 입사해 현대차 울산공장장 및 국내영업본부장, 기아차 대표이사를 역임한 故 김수중 사장의 아내로, 2019년 고인이 된 남편을 추모하며 글을 썼다. 평소 나무 심기에 누구보다 열중했던 남편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