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꽃들이 지고, 비로소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입니다.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기도 하죠.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는 이 계절을 벗삼아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군요. 아니, 한 군데 있습니다. 뚝섬에 위치한 서울숲입니다. 2005년 개원한 이 거대한 녹지대는 한국의 센트럴 파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숲 주변으로 상권이 생기고, 고급 아파트 단지도 속속 생기고 있지요. 물론 방문객들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축복 같은 땅이지만, 이 땅에 얽힌 사연들은 제법 다채롭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쌓여온 얘기가 많지만, 여기서는 남북이 갈라선 이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해방 후 뚝섬은 ‘물 반, 사람 반’이라 할 만큼 피서지로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해방 후 뚝섬은 여가 공간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 휴전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변화에 잔뜩 짓눌렸던 시민들에게 뚝섬은 자유와 여흥, 낭만과 쾌락의 공간이었습니다. 1954년엔 최초의 경마장이 들어섰고, 1968년에는 경마장 내에 골프장도 생겼습니다. 한강과 가까운 덕이기도 합니다. 한강이 직선화되기 전, 난지도, 여의도, 사평리(압구정), 뚝섬, 잠실섬에는 백사장이 있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백사장과 깨끗한 물을 가지고 있던 뚝섬 일대는 1950~70년대 최고 인기 피서지였습니다. 한창 때의 젊은이들은 동대문 이스턴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뚝섬행 단선 전동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름이면 당대의 멋쟁이들이 다 뚝섬으로 몰렸습니다
한강에는 물보다 사람이 더 많았고, 튜브를 어깨에 걸친 멋쟁이들과 시원한 냉차를 머리에 인 아낙이 백사장을 돌아다녔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보트를 움직여 강 건너 봉은사에 들르기도 할 정도로 한강은 단지 관망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백사장은 근대 개발 계획을 거치며 콘크리트 제방과 둔치로 변했습니다. 뚝섬한강공원의 수영장과 이웃한 캠핑장은 이전과 동일한 목적을 계승하지만 한때 즐거웠던 집단의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외형적으로 연상되는 단서가 전무합니다. 한편, 경마장과 골프장이었던 넓은 땅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적합했습니다. 90년대에는 이곳에 서울시청사를 옮기려고도 하고, 국제첨단업무개발단지 설립을 꿈꾸기도 했으니까요. IMF의 풍파만 겪지 않았더라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앞서 세계적인 규모의 LG 야구단 돔구장이 들어섰을 지도 모릅니다.
서울시는 이 알짜배기 땅을 민간에 넘겨 개발하는 대신, 시민의 휴식을 위해 돌려주기로 합니다. 이른바 서울숲 조성 사업입니다.
주거업무지역으로 전환한다면 약 4조 원의 개발 이익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서울시는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공간으로서의 뚝섬 일대가 지녔던 지역의 성격을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서울숲입니다. 약 2,500억 원을 투입한 서울숲 조성 사업은 2003년 3월에 (주)동심원의 계획을 채택하고, 총 1,156,498㎡(약 35만 평, 뉴욕 센트럴파크는 102만 평)에 대한 밑그림을 발표했습니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습니다.
서울숲 부지 개발이 쉽지 않았던 것은 도로로 인해 4등분 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부지의 통일감을 주기 힘들었지요
서울숲 부지는 다양한 역사의 흔적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닌 땅이고, 심지어 종으로는 왕복 12차선의 고산자로, 횡으로는 뚝섬로에 의해 사분할 된 까닭에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긴 했습니다. 공모전에 제출한 12개의 제안들을 보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던 공모전 지침을 준수하는 데만도 꽤나 벅차했음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대동소이한 제안들 속에서 (주)동심원의 마스터플랜에 도입된 새로운 사선 축과 원형의 축은 한 번 더 눈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이러한 보행 축은 굵직한 교통로에 의해 분절된 영역을 꿰매고 하나의 공원으로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서울숲은 문화예술공원, 생태숲, 체험학습원, 습지생태원, 한강수변공원, 이렇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었고, 이들은 별개의 장소라 해도 좋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한강 공원과 생태숲을 사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문화예술공원의 중심부까지 연속되는 공중보행가교는 의도적으로 구불구불하게 낸 길들 사이에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먼 거리를 단축시키는 효율을 자랑합니다. 생태숲과 체험학습원에 놓인 동심원상의 호는 역시 군데군데 형성된 자연스러운 산책로와 만나며 불규칙하게 조각난 땅들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모양새입니다.
공원과 숲은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공원이 다소 인공적이라면 숲은 자생적이라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서울공원이 아닌 서울숲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서울숲이 90년대 모든 조경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여의도광장 공원화계획에서 한 단계 나아갔던 건, 도시 공원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숲'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공원이 계획에 의해 마련된 인상을 준다면, 숲은 자생적이고 생태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지하철 서울숲 역에서 내려 언더스탠드 애비뉴를 따라 걸으면 서울숲의 정면이라 여겨도 좋을 곳에 당도합니다. 이곳이 정면이라고 단정하지 않은 것은 공원 전체의 형상이 파편적이라 정면이 갖는 위계가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좌측으로는 안내 센터가 있고, 과거 골프장의 잔디가 널따랗게 깔린 가족 마당이 시작하기 직전까지는 좌우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정면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축을 박차는 말들의 힘이 느껴지는 군마상과 아이들이 신나서 달려드는 바닥 분수처럼 뚜렷한 이벤트 공간이 중심축을 구성합니다.
서울숲에 있는 군마상입니다. 이곳이 예전에 승마훈련원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나무의 모양까지 고집스럽게 재단한 인공적인 정원에 비하면 그 규모나 섬세함에서 아쉬운 느낌도 있지만, 이는 도심에서 녹지로 전환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문턱 같은 장치일 것입니다. 이러한 진입부를 지나 잠시 조각 공원의 낯선 조형물들에 눈길을 주다보면 어느새 자연의 품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공원은 앞서 얘기했듯, 질서정연한 패턴과 대칭의 힘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확정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이 숨 막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토샵 같은 이미지 보정 툴로 누군가의 얼굴을 대칭으로 만들었을 때 낯선 인상으로 변하는 장면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입니다. 살아 움직임을 전제로 한 대상에게 완벽한 대칭은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본능적으로 어색한 상황입니다. 스타벅스 로고의 세이렌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비대칭이거나, 자동차 제조업체인 벤틀리의 엠블럼에서 날개 깃털의 수가 다른 것도 완벽한 대칭의 어색함을 없애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원들은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인간의 손을 빌었음에도 그렇지 않은 척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랫말에서처럼 ‘그림 같다’는 수식에 제격이겠죠. 서울숲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각 정원 옆으로 길게 뻗은 거울 연못은 클로드 글래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그림 속에나 등장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현실로 재현하려는 욕구가 꿈틀거렸습니다. 이 예술 사조를 픽처레스크(picturesque)라고 불렀습니다. 픽처레스크는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을 건축이나 정원 등에 구현하려던 시도였습니다.
서울숲에서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이 픽처레스크 사조가 드러납니다. 특히 조각 정원의 옆으로 길게 뻗은 거울 연못이 그렇습니다. 거울 연못은 한 변이 긴 직사각형의 꼴을 하고 있는데, 바닥은 검은색 마천석을 광택이 나도록 연마하고 그 위로 3cm 깊이의 얕은 물을 채웠습니다. 연못이라고 하지만 그 무엇도 빠지지 않는 안전한 수공간입니다. 2016년에는 이 연못이 패션쇼 런웨이로 쓰이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대신 검은 광택의 바닥 덕에 풍경을 반사하는 수면의 특징은 극대화 되었습니다. 송사리가 노닐 정도도 안 되는 깊이에 주변 풍경의 모습이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시선을 적절히 두면 중랑천 너머 응봉산까지 가둔다고도 합니다. 특히나 검은 거울을 연상케 한다는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영국에 픽처레스크 성향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표면이 어두운 색으로 착색된 작은 거울을 들고 다니며 거울에 반사된 풍경을 즐겼습니다. 당대의 화가인 클로드 로랭이 고안했다 해서 클로드 글래스(Claude Glass) 혹은 블랙 미러라 합니다. 현대인들이 인스타그램 필터를 사용해 누추한 현실을 몽환적으로 바꾸듯, 옛날 사람들 또한 이국적 빛깔로 필터링한 등 뒤의 풍경을 거울 속에 담아 작은 세상으로 감상했습니다.
어디로든,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숲이 주는 낭만입니다
이제는 50m 길이의 이 거울 연못을 활주로 삼아 자유로운 여정에 오르면 됩니다. 어디를 향하든 아쉬울 일은 없고, 숲 전체를 다 거쳐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경향은 비슷합니다. 나무들이 일렬로 곧게 정렬한 축에 몸이 이끌리는 법이죠. 메타세콰이어의 드높은 자태는 잎이 없는 겨울에도 남다른 위엄이 있습니다. 이 직선 산책로는 과거 말들이 힘껏 발돋움하던 경마 트랙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모르는 반려견들은 그저 평탄한 잔디밭을 달리느라 행복하기만 합니다.
생태숲에서는 사슴 무리를 볼 수도 있습니다
서울숲의 서쪽 끝으로 가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늘씬한 은행나무들로 빼곡한 은행나무숲은 서울숲 안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사색적인 공간입니다. 어찌나 나무가 촘촘하게 놓였는지 도로에서의 소음과 먼지를 막아주는 완충벽으로 제격입니다. 생태숲에 이르면 소박하지만 사슴 무리를 볼 수도 있습니다. 구제역 확산 탓에 먹이를 직접 줄 기회가 그리 자주 오진 않지만, 보행가교 위에서 녀석들의 한가로운 움직임을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앙상한 가지들로 다소 인기가 떨어지는 겨울에는 체험학습원에 위치한 식물원과 정원을 찾아도 좋습니다. 유리 온실 속에는 또 다른 자연이 펼쳐지고, 어항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토종 물고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는 일본 싱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만화가입니다. <주말엔 숲으로>는 주말마다 숲에 놀러가는 3명의 친구들을 통해 느긋하게 숲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말엔 숲으로>에서 등장인물은 자연에서의 시간을 통해 소소한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너도밤나무는 부드러워서 건축 자재로 쓰이지 않지만, 겨울 폭설에도 부러지지 않는다”거나, “숲 속의 잡초들은 커다란 나무에 가려 충분한 빛을 쬐지 못하지만, 조금의 빛으로도 살아가는 강인함이 있다”는 이야기에 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누가 무엇을 했고, 거기엔 무엇이 있고, 그래서 어떠하다는 설명도 “인간은 항상 목적지를 향해 걷지는 않는다”는 주인공의 깨달음 앞에서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꽃잎이 흐드러지고, 푸르른 싹이 돋아나는 계절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피는 숲의 싱그러움’처럼, 누군가 봐주기를 애써 바라는 마음, 혹은 유행하는 곳에 가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은 도시인의 불안은 뒤로하고 ‘숲’을 찾아 몸을 일으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 배윤경(건축가)
건축가 배윤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Berlage Institute)를 졸업했다. 현재 대학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여러 미디어에 건축 관련 글을 쓰고 다양한 강의도 한다. 저서로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 DDP 환유의 풍경 >(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